대마도 정벌이 시작되다
우리나라가 대마도를 3번에 걸쳐 정벌한 역사적 의미를 나름대로 이번 자전거 여행을
대마도 4차정벌이라는 논리를 만들어 민족의 혼이 깃들고 숨쉬고 있는 대마도의 발자취를 찾을 계획으로 숨가픈 8월의 일정을 하루 하루 만들어갔다
정벌 첫째날 새벽 5시경 분주한 손놀림으로써 각종 장비와 자전거 점검을 마치고 부산역 주차장에 나의 애마(갤로퍼)를 주차시켜 놓고 사무실로 올라가 진주여행스케치 게시판에 대마도 정벌이 시작되었음을 고하고 낯설은 이국의 정벌길에 올랐다
8시30분! 정벌의 배 [SEA FLOWER]호 출항의 닻(엔진)을 올리고 서서히 돌아와요 부산항을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아침 하늘은 벌써 뜨거운 햇살이 창가로 창틀에 올려 놓은 나의 팔에 와닿은 느낌과 부산항의 잔잔한 파도위를 달리는 씨플라워호의 선미부분에 와 닿는 느낌이 같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배는 시속35노트의 속도(선장의 방송 맨트)로 대마도를 향하고 있었다. 이 배는 갑판이 없을뿐만 아니라 고속으로 달리기 때문에 선실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어 시원한 부산항의 바람을 느낄수 없어 조금은 서운했다
출항 1시간쯤 되자 오른편으로 나타나는 작은 섬을 시작하여 대마도의 형체가 뚜렷하게 부상하는 것을 보았다.
대마도는 88%가 산악으로 이루어 진 작은 섬(거제도보단 크고 제주도 보단 작은 섬)
공해로부터 오염되지 않은 곳으로써 대마도 본섬 외에 109개의 섬이 있으며 사람이 사는 곳은 5곳, 인구는 약4만 7천명, 대마도의 중심지는 이즈하라는 약1만 8천명이 살고 있다
배는 예정시간보단 조금 늦은 시간(11시20분)에 이즈하라항에 도착하였다
생각보단 까다로운 일본식 입국절차을 끝내고 우리민족의 역사가 고스란히 숨쉬고 있는(이즈하라가 역사적 유물들이 많이 있음) 이즈하라의 땅을 맞이하였다
내가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여객터미널 옆에서 개최되고 있는 대마도아리랑 축제의 한마당을 보기 위하여 천천히 자전거 페달에 힘을 가하였다
대마도 아리랑 축제는 매년 8월 첫째주 토,일요일 개최는 축제로서 대마도와 우리나라의 역사적의미를 갖기 위하여 열리는 축제로서 불꽃놀이, 노젓기, 통신사 가장행렬 등등의 다양한
이벤트로 거행되고 있었으며, 축제장의 야시장은 우리나라처럼 다양한 장사꾼들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음식류 종류가 많이 있었다.
내가 다음 행선지로 간 곳은 대마역사민속자료관을 찾았다
이 자료관 입구에는 "조선통신사지비"라고 새겨진 비석을 있었으며, 이 역사자료관에 보관되어 있는 길이16.58m의 두루마리에 채색으로 그린 조선통신사의 행렬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림에는 우리의 통신사의 느름한 자태를 볼수 있었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자료관 앞 길을 따라 골목길을 조금 올라간 한 산사(절) 있는 구한말의 항일운동가가 대학자였던 면암(勉菴)최익현선생의 넋을 기리는 순국비가 초라하게 서 있었다. 최익현 선생은 1906년 일본군 사령부로부터 징역3년형을 선고받고 끌려와서 단식투쟁으로 그 기개를 떨쳤으며 돌아가신 선생의 유해는 백제 비구니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이 절에 나흘동안 안치된 후 부산항으로 이송되었다고 합니다. 이 절은 절이라기보단 오랜 된 가정집 같았다. 그 뒤편으론 마을 공동묘지가 있었고 그 맨 앞에쪽에 선생의 비가 서 있었다
부산 집에서 준비해 온 주먹밥으로 간단하게 점심을 먹은 후 대마도 정벌의 첫 여정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으며, 그 첫 여정은 이즈하라의 남쪽(하대마도)을 먼저 공략하는 전략이였다. 중앙선이 없는 좁은 대마도의 도로(폭 약4m)를 천천히, 꾸불꾸불, 힘차게, 오르고 올라도 보이지 않는 산복도로(거의 죽다가 살았음. 약3시간 가량 오르막-전망대 윗 길 포함)!
정말 죽을 힘을 다하여 올라가다 쉬고, 눕고, 기대기를 반복하는데, 강렬한 태양의 열기 때문에 선크림을 바르기를 수십번.........! 그런데 지치고 힘없는 날 따르는 무리가 있으니 그것은 대마도의 야생 고양이, 고양이라기보단 삵괭이에 가까운 야마네코(일본말로)와 약간의 갈색을 띠는 검은색의 몸집이 크고 사납다고 하는 까마귀가 높은 창공을 휘젓으며 ..... 꼭 내가 지쳐 죽으면 자신들의 먹이감으로 최고라고 생각하면 나를 따라오기를 약1시간........ 정말 기분이 영 아닌 사항이 전개되어 정말 해골이 도는 것이 미칠 것 같았습니다.
이즈하라항을 출발한 지 약 2시간 30분쯤 그렇게 높아 보이던 전망대에 오르는 순간 아!
이것이 정말 인생의 묘미라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멀리 바라다 보이는 저 멋진 광경들과 선선히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죽인다!!
이 전망대 오른쪽은 한국의 바다이고 왼편은 일본해라는 방향 안내판에는 나가사끼, 후쿠오까, 부산, 제주도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는 둥근원형의 테이블이 전망대 중앙에 세워져 있었다. 전망대에서 만난 일본본토 사람들과 정답게(바디랭기지) 이야기하고 사진을 서로 찍어주며 한국인의 자랑스러움(자전거로 대마도 일주를 한다는 소리를 듣고) 뒤로 한 체, 대마도 여름철의 최고의 명소로 알려져 있는 천년 화강암으로 구성된 계곡의 맑은 물과 울창한 살림 그리고 출렁다리 그편으론 소규모 캠프장, 산책로, 놀이기구등으로 구성된 아유모도시("은어가 돌아온다" 뜻)자연공원을 향하여 긴 내리막 길(이 대마도는 내리막도 힘듬. 왜냐하면 우리나라처럼 산등성을 길게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직각에 가깝게 내리막이 되어있음)을 힘차게 내려 왔답니다. 이 아유모도시자연공원에서 긴 휴식과 저녁밥을 먹고 다시 한번 긴 호흡과 함께 정벌의 긴 늪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그냥 이곳에서 다음날까지 휴식을 취하고 갔으면 그 무서운 야밤의 식은땀나는 일을 당하지 않았을 것을..... 잠시후를 기대하시라!) 페달을 밟은지 한 15분쯤 이즈하라항의 반대편 바다가를 볼 수 있었다
이 곳의 바다사당과 마을의 사당의 모양은 같았다(대마도는 마을 곳곳에 이 사당들이 있음)
사당에서 멀리 한국바다를 바라다 보는 것도 잠시 조금전부터 밀려오는 피로의 누적된 나약한 나의 육체들의 거부감들.......... 정말 첫날부터 힘든 자전거 여행 여기서 이렇게 지쳐버리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힘을 내어 페달을 밟아보았지만
여전히 속도는 나지 않고 손은 자꾸만 물통으로 가고(내 생전에 이렇게 물을 많이 먹어 본전은 전혀 없음) 해는 점점 지고 가다보니 어느 한 지점에서 지도를 보니 다시 이즈하라로 가는 삼거리에서 30분을 생각하다(정말 고심했음. 실은 잠자는 곳을 정하지 않고 왔기 때문에....그런데 내가 야밤의 10급을 한 이유가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여러분들 중에는 저의 스타일을 알지만 저는 한번 온 길은 다시 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때 시간 저녁7시경!!!!
저는 지도를 보며 좋아 가다가 아무 곳에서 자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다시 긴 긴 늪으로 빠져들며 페달에 힘을 주었습니다
한 30분 갔을까 조그만한 바닷가마을에 도착(날이 어두워 졌음) 작은 가게에 들어가서 이곳에 여관(일본발음과 우리 발음 비슷함)이나 민박이 없는냐고 물었습니다.
일본사람들 정말 친절합니다(미안할만큼) 그러나 자신의 집에는 이방인 재워 주는 않는 것을 미신을 알고 있습니다(대마도 여행땐 참고하시길) 그 집 아저씨에게 사정 사정을 하니까
자신을 따라 오라하여 따라 간 곳이 일본사람들 바닷가 사당에서 자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까? 뒷 돌아가는 일본사람 뒷통수리를 향하여 속으로 미친놈하고 욕을 했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그 일을 모르고 바보같이 정말 바보같이 그냥 그 사당에서 군소리 없이 잤으면 그 험한 일도 당하지 않았을 것 을..............!
저는 속으로 욕을 하면서 바닷가 사당을 나오는데 한편 저쪽으로 불빛이(대마도사람들 저녁8시쯤 되면 거리에 나오지 않고 다 자는 것 같았음. 도시도 별다를 것이 없음) 보여 자전거를 타고 그 집 앞에(그 집 주변이 공동묘지와 같았음) 긴 의자 앉아 있는 노인네에게 나의 처지를 호소했지만 그 대답은 NO! 그래서 여기서 다른 마을까지는 얼마나 되는냐 물었던니 한 7킬로쯤(대마도사람들 거리감각이 정말 없음. 정벌 둘째날 이것에 대하여 이야기하겠음) 된다는 말에 자전거로 한시간만 가면 나오겠지 하고 배낭에 있는 야광지휘봉에 전원을 투입하고 자전거 라이트를 켜고 다음 마을로 향하기길........................!
얼마나 왔을까 계속되는 산새들의 울음소리, 옆에서 흐르는 계곡 물소리, 어두운 양옆에서 간간히 들어오는 이상한 소리들...... 이때부터 나의 뒷통수(어깨위에서부터 넓이10센티 길이20센티)가 점점 굳어지면서 등으로 식은 땀이 솟아나고 머리털이 쭉삣 서고 이마에는 잔잔한 전율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암흑의 좁은 도로를 작은 자전거 라이트와 등에 있는 지휘봉의 불빛만 의지한체 얼굴은 어느곳을 두지 못한체 사주경계를 하면서 자전거를 타는 그 심정이란 지금도 등골이 써늘하게만 느껴집니다
아까말한 일본고양이 생각합니까 그 고양이 무리들이 건너편 언덕 위를 나의 자전거 속도와 같이 하면서 따라오고(어둠속에서 보는 고양이 눈! 이 눈들이 여러마리가 되면 얼마나 무서운지) 아이구 소름끼쳐........... 그렇게 끝없는 산 길(아침에 일본사람들에게 내가 온길을 물어보니 산새가 깊고 높다고)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리는데 웬걸 갈림길이 나오지 않습니까
잠시 자전거에서 내려 지도를 보면서(이때 눈과 자전거 라이트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었는지를 여러분께서 상상해 보십시오) 갈팡질팡하는데 그때 어디서 무섭게 천둥소리처럼"푸우"
하는 소리함께 손발이 마비되는것처럼 뒷골이 띵하게 느껴지는 것이..........아이구 무서워....
자전거 라이트를 소리나는 곳으로 향하여 자세히 보니 야생 메돼지가 나를 향하여 쳤다보지 않겠습니까! 그 순간 무슨 힘나는 지 나는 있는 힘을 다해 그 오름막 길을 정신없이 올라 갔습니다. 산 정상에서 지금 내가 이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냐! 나 자신에게 질타를 하면서 한숨을 돌려습니다(아직도 야생고양이들의 눈빛은 계속되어 있었음)
여기 쉬어가는 글로 그때 고양이들이 나에게 달려 들지 않은 이유를 아시는 분은 이글의 꼬리말에 정답을 적어주시면 다음 정모때 제가 직접 소주 한잔 쏘겠습니다! 한잔입니다!)
그렇게 위기를 모면하고 내리막이 시작된지 웬걸 자전거의 라이트를 고정해주는 고무팩킹이 어디로 날아갔는지 자전거 라이트 불빛이 자전거 바로 앞만 비추는 것이 아닙니까
정말 돌아 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그 급경사 내리막길을 왼쪽손은 라이트, 오른쪽 브레이크로만 내려오는 그 힘든 과정을 한 지를 얼마후 저 멀리서 인가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때 기분은 가슴이 터지는 줄 알았습니다(아마 여성분은 울었을걸요)
마을에 접어드니 마을 전체가 대부분 자고 있는 분위기.... 이렇게 되면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이야하고 불빛이 있는 곳을 찾아가니 우리네 마을회관처럼 생기곳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에는 일본 젊은사람들 몇 명이 자신들의 전통춤을 방금 끝내고 쉬고 있는 상황이였으며
그중 한명을 제가 손짓으로 불렸습니다
저는 시계를 한손으로 지시하고 입으론 영어로 이 곳에 잘 수없는냐(영어반 바디랭기지반)
하고 열심히 조금전의 상황을 설명하고 잘수 있겠해달라고 간청을 했습니다(자존심은 완전히 무너지고) 한명이 어디로 열심히 전화를 했지만 느낌으로 알았지만 전부다 NO라는 대답뿐!!! 가슴이 정말 무너지고 아파오고 ..........!
그렇게 한30분을 논쟁이 있었을 때 한 명의 일본젊은사람이 자신을 따라오라고 해서 저는
멍하게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 젊은사람은 자신의 자동차에 시동를 걸고 다른 한명은 오토바이를 타고 저는 그 무리를 따라 한 3분쯤 가니 한 2층에 도달하였습니다
바로 자동차 주인의 집이였습니다! 조금 기다려달라고 하면서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던니
잠시후 2층에 불빛이 비추고 저를 들어오라는 말에 저는 다른 한명을 따라 집안으로 들어가 2층계단을 올라가서 그 젊은사람의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방은 제가 밖에서 생각했던 방구조와는 전혀 다른 깨끗하고 인테리어가 잘 된 방이였습니다
잠시 그 마을회관에서 보았던 3명이 2층으로 올라왔습니다 그들 중에 한명이 저에게 흰휴지로 감은 커다란 두 개의 물체를 저에게 주었습니다
그 물체는 따뜻하게 구워 온 핫도그였습니다! 정말 꿀 맛같은 핫도그 !!!!!!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 집의 젊은사람은 저에게 1층으로 따라 오라하면서 수건을 건내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샤워장에서 오늘의 피로를 마음껏 떨쳐버리고 2층으로 올라가서 배낭속의 소주와 한국에서 가지고 온 신라면을 주면 고맙다고 하니 그 젊은 사람은 사양을 하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사양하지말고 받으라고 하니 그때서야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받았습니다
저와 5명의 일본젊은 사람들과 함께 일본어, 한국어, 바디랭기지등등을 사용하면서 즐겁게(시원한 일본맥주를 마시면서) 이야기 하다가 그 집 젊은 사람이 어디론가 전화를 하다가 저에게 휴대폰을 주는 것이 아닙니까? 그 휴대폰속에서 흘러나오는 한국 젊은여자의 목소리
"여보세요" 이 얼마만에 들어보는 한국발음(나중에 알았지만 그 한국젊은여자는 이집의 며느리, 즉 시댁) 저는 그 한국사람에게 저의 오늘 일을 설명하고 이 집 젊은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좀 해달라고 하면서 이 곳의 지형(내일 시작될 일정때문에) 물어보니 내일 어디로 갈 것인지를 물어서 만제키다리방면으로 해서 하타카츠로 갈 것이다 대답하고 잠시후 자신의 시동생을 바꿔어 달래해서 휴대폰을 건네 주었던 둘이서 한참을 이야기한고 난후 다시 저에게 휴대폰을 주어서 받으니 내일 아침에 시동생이 자동차로 만제키다리까지 나를 데려다 줄것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고맙데!!! 역시 한국인의 핏줄은 속이지 못한는 것이야
나는 일본 아이들(대부분20대 중반)과 집안에서 사진도 찍고 인터넷(우리 진주여행스케치의 카페사항들을 보여주고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등등!! 일본아이들 우리여자회원들 사진들보고 자기끼리 보면서 점수를 주면서?????????????????????? )을 하면서 놀다보니 이 집 안주인이 들어오지 않는 것인가
저보단 몇 살 많은 것 같았고 자신의 아들과 함께 맞담배를 하는 것을 보니 조금은 이해가되지 않았지만 나에게 친절하게 대하여 주면서 한국에 관한(자신의 며느리 나라) 이야기를 하다가 조용히 내려 갔습니다! 그 집아이와 다른 한명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일을 기약하면서 깊은 잠나라로 빠져들어 갔습니다!
이렇게 대마도 정벌 첫째날을 힘들게(첫 정벌치곤 호된 신고식을 마치고 )
다음 둘째날의 힘든 여정을 기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두서없이 적다보니 문맥이나 철자가 틀린 곳이 몇곳이 있네요!!!! 이해하시길..........
'나의 추억'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대마도 마지막날 (0) | 2014.06.30 |
---|---|
[스크랩] 대마도 정벌 둘째날 (0) | 2014.06.30 |
[스크랩] 사색속에서 산림욕을...... (0) | 2014.06.30 |
[스크랩] 선암사에서 송광사 (0) | 2014.06.30 |
[스크랩] 이 가을 --- 알찬 수확! (0) | 2014.06.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