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기

2008년 가을 추억만들기(남도를 찾아서....) 1막

박지리요 2008. 10. 21. 17:54

경상도 머슴아 3놈이 가을을 느껴보려고 이리 계획해보고 저리 연구해본 결과...

 1차 베트남 하롱베이를 주여행지로 잡고 사고를 치려고 하니 날이 날이만큼 뜻대로 않되고.......

2차는 대한민국 울릉도 독도를 벗삼아 쇠주한잔과 싱그러운 바다향을 안주로 흠뻑 취해보려고 했것만...

마지막으로 가을에 어울리는 우리나라중에서 갯벌의 일번지 서해안을 보자는 의견으로 통일하고

무작정 떠나자는 합의 아래 10월 3일 새벽 05:00시 해운대 아울렛정문에서 집결하여 자동차 바퀴가 가는대로 정처없이 일을 질렸다!

다들 새벽부터 설쳐 나온지라 배가 고파 밥부터 먹으면서 첫 방문지를 결정하자고 하여 남해고속도로 진영휴게소에서 서둘러 아침을 먹으면서 내가 군산에 있는 선유도를 꺼내들었다

다를 선유도를 가보지 않았다는 의견으로 선유도를 첫 방문지로 하고 진주-장수-진안-전주-익산-군산을 향하여 안개가 짙은 새벽 고속도로를 달려 군산에 도착했다

옛날에 한창 잘 나갈때(고기값이 좀 있을때 ???) 몇번 군산을 왔지만 .... 이제 세월이 세월이라

너무 많이 변해 있는 군산은 옛날 시골 냄새가 나는 군산이 아니네요!

우리 일행이 군산에서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9월에 개장한 진포해양테마공원으로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각종 군사장비 전시관으로 군함, 장갑차, 비행기, 헬리곱터,,,,등등을 바닷가 선착장에

전시한 곳이였다

 진포 해양테마공원내 군함전시관

군함앞에서  

 군함 전망대위에서

 참!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을 위해서 잠시 군산에 대해서 이야기할까 합니다(대학입시에 나옴^^:) 

군산은 조선시대 세종 때 해상방어기지로서 선유도에 있던 군산진이 옮겨졌다. 그리하여 조운 조창이 발달한 곳이기도 하다. 군산은 마한 백제시대 이후 금강의 수문 역할을 하며 전북·충남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일제시대에는 육상 및 해상교통의 변화(전군도로의 개설, 호남선과 군산선 철도의 개통, 군산 항만시설의 확장 등)에 따라 강경의 경제 기능까지 포괄하게 되었고, 금강과 만경강 하구의 대규모 간척과 호남, 논산평야의 농업 개발로 쌀을 실어나르는 항구가 되어 '쌀 수탈'이라는 도시 성격은 더욱 커졌다.

  군산은 옥구군에 속하였으나, 1899년 개항하였고 도시가 커짐에 따라 1906년에는 옥구부로 이름이 바뀌고 1914년에는 군산부가 독립되어 옥구군과 나뉘었다. 이때는 옥구군의 행정 기능도 군산으로 옮겨져 예전의 옥구현은 읍면이 되었다.

  군산시가 커지면서 군산시와 가까이 있는 옥구군의 읍면과 여러 섬들이 항만 건설과 공단 조성으로 군산시에 속하게 되었다. 특히 1995년 옥구군이 군산시에 통합되면서 1914년 2.05㎢였던 땅은 수백 배나 커졌다. 

군산시의 면적은 376.35㎢이며, 경지면적 중에 논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편이다. 이는 서수, 대야, 회현, 옥서, 산북동의 일부 지역이 간척지이기 때문이다.

  1980년부터 주택지를 만들고 아파트를 건설함에 따라 전에 시내 중심에 살던 인구가 시내 바깥쪽에 건설된 아파트 단지로 옮겨가면서 예전의 시내 중심의 동(洞) 지역은 대부분 인구가 줄었고, 조촌동과 나운동 등 시내 주변동은 인구가 늘었으며, 나운, 조촌, 신풍, 경암, 흥남동의 순서로 인구가 많다. 1997년 말 현재 인구가 281,437명으로 인구밀도는 748명/㎢이며 주택수는 73,759호이다. 최근 대우 공장의 입주로 인구는 전체적으로 늘어나는 편이다 

 

                           군산여객선터미널 방조제 (저녁놀이 정말 죽여줍니다)

농어업을 바탕으로 하여 발전해 온 군산시는 1970년대부터 공업항으로 크게 변하고 있다. 군산 외항의 건설(1974-80)과 공단의 조성(1978-91)으로 오식도, 내초도, 비응도, 가도가 공업단지가 되었다. 금강하구둑의 건설(1983-89)로 장항, 서천 등을 포함하여 금강 하류의 중심도시가 되고 있다. 하구둑에 철도가 놓이게 되면 장항선이 군산까지 연장되고 서해안 고속도로의 건설로 육상교통이 더욱 발전하게 된다.

  군장 산업기지의 개발과 새만금 간척사업이 이루어지면 군산은 금강-만경강-동진강 하류 및 하구의 농업과 어업의 중심도시가 되면서 거대한 공업지대의 중심항이 된다. 중국과의 교역이 늘어나고 나아가 서해안 시대의 중심항이 될 것이다

이상으로 역사공부를 길게나마 했습니다(위 자료는 인터넷에 있는 자료입니다)

 

다음으로 간 곳은 월명공원으로서 작은 공원이겠지하고 올라 갔는데 높이는 높지 않지만 길이와 면적이

장난이 아니네요1 저희들이 수시탑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 아줌마들에게 여기 공원에 저수지로 가려면

얼마나 가야하나요 물었더니 한 40분쯤 걸어가야 저수지가 나온다는 말에 "이왕 공원까지 왔는데

흔적을 남기고 가야겠다고 하여 아줌마에게 한 컷 부탁......

월명공원  수시탑에서

월명공원 정상에 있는 수시탑은 지난 1967년도에 '성시탑'이란 이름으로 바람에 나부끼는 선박의 돛과 번영을 상징하는 타오르는 불꽃을 나타내는 모형으로 건립한 높이 28m의 군산의 상징탑이라고 합니다.

비 오는 밤 일렁이는 불빛 속에 항구의 낭만이 익어갈 때 금강 건너로 바라다 보이는 장항(長項) 일대의 풍경은 수채화처럼 부드럽고, 가을 밤 옷깃을 여미며 오른 전망대 앞 굽은 소나무에 걸린 달이 뿌리는 빛의 명암은 한 폭의 한국화를 연상케 하고, 능선과 골짜기를 따라 나 있는 산책로를 따라가 보면 전망대, 수시탑, 바다조각공원을 만나고 삼일운동기념탑을 지나면 공원 기슭에 웅장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청소년의 전당 청소년회관이 자리하고 있고 봉수대(烽燧臺)터가 있는 점방산 정상에 오르면 금강과 서해바다가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조금전에 말씀드린 월명공원의 품 속에는 1912년에 시민에게 식수를 공급하기 위해 만든 제1수원지가 물 안개를 뿜어내는 산 속의 호수로 변하여 산새와 작은 동물들이 목을 축이는 곳이 되었고 설림산 아래 천년 고찰 은적사(저희들이 올라간 지점)에서는 고목나무 몇 그루가 지나온 세월을 알 수 있었다.

 

  해망굴(은적사아래에 있는 동굴터널)

해망동 터널 은 1926년 10월 16일 당시 명치통(현 중앙로)과 해망동을 연결하는 터널로 개통 되었다고 하며, 우리가 갔을때에는 김을 양식을 하기 위하여 여러사람들이 조개가루(얼피보기에), 분홍색같은 사료 등등을 배합하여 망(스타킹처럼 생겼음)에 넣는 작업들을 하고 있었다.

 

김 양식을 하기 위하여 작업하는 모습 

 이제 월명공원을 뒤로 하고 우리가 가고자하는 선유도를 향하여 let go!

여객연안터미널을 찾아가는 중에 배에서 먹을 간단한 맥주와 과일등을 사려고 마트를 찾아 삼만리...

이놈의 마트에서 장을 보는 것이 길어져 터미널에 도착하니 방금 선유도 출발 배가 떠나다고 하여

우리는 다음 배를 예약하고 1시간 20분쯤을 죽이기 위해서 군산의 간척지 새만금으로 향하였다

 

새만금 방조제에서 

저희가 새만금을 처음보았을때 그때의 첫 느낌은 "와! 엄청! "저 넓은 바다를 다 ......" 정말 대규모 공사라는 생각과 방조제가 거의 완공이 되어가고 있다는 말에 우리의 기술력이 장난이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 저희는 시간이 없어 방조제로 들어가는 차량만 바라보고 사진만 한 컷하고 왔습니다

이 곳이 완공이 되면 제주도의 1/4, 여의도 140배라는 평지가 생겨났다고하니.....

참 선유도를 가는 배가 군산여객연안터미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이 곳 새만금에 있는 항구(기억이 잘..)

에서 선유도 방면 배가 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쩐이 있는 분들은 아직도 늦지 않았으니 부동산 투기^^:를 권해드립니다(온통 부동산 가게 즐비하게 있음)

 

군산 연안여객터미널에서 

자! 이제 선유도를 향해를 시작하겠습니다!

화장실 갔다오실 분들은 갔다오시고 .................                       채널고정.......

아하! 마이 미스테크닉!

잠시 후 선유도의 아름다운 경치를 2막에서 기대하시라!